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문애리 이사장
미래 세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이 지속가능발전이다. 1987년 유엔 ‘브룬틀란 보고서(Brundtland Report)’에서 제시한 이 개념은 미래 세대가 살아갈 터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이후 2015년 유엔은 이를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과제로 구체화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채택했다. 빈곤과 기아의 종식, 건강과 교육, 성 평등, 깨끗한 물과 에너지, 양질의 일자리, 기후행동, 불평등 해소, 평화와 협력까지. 어느 하나 뒤로 미룰 수 없는 과제들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목표들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하나의 목표가 흔들리면 다른 목표들도 함께 영향을 받는다.
대한민국도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왔다. 2018년 K-SDGs를 수립했고, 2024년에는 지속가능발전기본법에 따라 대통령 소속 지속가능발전국가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올해는 2026년부터 2045년까지를 내다보는 제5차 국가기본전략을 마련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10년 만에 자발적 국가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제 제도의 틀은 어느 정도 갖췄으니 실제 변화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 남은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부처들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은 주요 행정계획이 K-SDGs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사전에 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절차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속가능발전은 특정 부처의 과제가 아니다. 기획예산처의 예산 편성 기준에 반영돼야 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후·에너지 전환 기술혁신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교육부의 교육과정에 녹아들어야 하며, 보건복지부의 사회안전망 설계에도 반영돼야 한다. 한 부처가 탄소 감축을 위해 노력하더라도 다른 부처가 에너지 집약적 구조를 유지한다면 성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모든 부처가 SDGs를 공통의 기준으로 삼을 때 정책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의 인식과 참여도 중요하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지속가능발전을 안다’는 응답은 57.6%로, 2007년보다 두 배 이상 높아졌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실제로 지속가능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응답은 34.5%에 그쳤다. 알고는 있지만 체감하지 못하는 간극이 여전히 크다는 의미다. 특히 이 문제를 앞으로 가장 오래 마주할 30대 이하 세대의 공감도가 50대 이상보다 낮다는 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시민 참여의 실천 방식도 지금의 친환경 소비 단계에서 앞으로는 더 넓고 깊어져야 한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려면 개인의 생활습관 변화뿐 아니라 정책을 움직이는 시민의 목소리와 행동이 필요하다. 내가 사는 지역의 대기 질은 어떤지, 청년 고용률은 어떤지 두루 관심을 갖고 지역 의제에 참여해야 정부 정책을 움직일 수 있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유엔 과학기술혁신(STI) 포럼이 ‘변혁적이고 공평한 과학기술혁신을 통한 2030 의제 달성’을 주제로 열렸다. 물·에너지·도시·산업 분야에서 각국의 이행 현황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필자도 참석해 청년 창업 지원 방안과 물 인프라 관련 발표를 하고 왔다. 유엔 포럼에 참가할 때마다 기술도 있고, 제도도 존재하지만 이를 실행하려는 의지,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라는 새로운 틀이 마련된 만큼, 이제는 그 틀 위에서 실제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2024년은 파리협정 이후 처음으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이 1.5도를 넘어선 해로 기록됐다. 지속가능발전은 언젠가 완성해야 할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다.
지난해 폭염으로 100명이 넘는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올여름도 지난해보다 더 강한 폭염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가 마주할 더위는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 묻는 청구서일지 모른다. 청구서를 외면할수록, 다음 세대가 감당해야 할 대가는 더 커질 것이다.
☞ 기고문의 원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11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