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WiTH 다양성 기고]
인간과 인간-너머 존재의 공존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식탁’
![]()
김인선(부산대학교 다양성위원회)
모두를 위한 한 끼
난 돼지고기는 (종교적으로) 못 먹어요. 근데 진짜 많이 나와요. 그래서 난 그냥 밥 먹고 그냥 고기를 버리고 그렇게 있어서 난 진짜 돈 줬는데 그냥 이거 안 먹고 이렇게 생활하는 거 진짜 어렵네요.(「2023 부산대학교 다양성 보고서」)
부산대학교 외국인 유학생의 발언은 다양성이 결여된 사회에서 한 개인이 겪는 불편을 넘어 문화 존중이 결여된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 작가 존 란체스터(John Lanchester)는 “과거에는 음식이 문화로서 당신의 출신지를 말해주었다면, 이제 음식은 당신이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를 말해준다”고 설명한다. 음식이 개인의 정체성과 정치‧사회‧문화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는 의미다.
근래 비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제 비건은 하나의 유행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비거니즘(Veganism)은 19세기 영국 채식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되어 미국, 독일 등지로 확대가 되었고, 한국에서도 2000년대 이후부터 유의미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세계 인구 리뷰World Population Review」는 2025년 비건 인구를 1억 5천 4백여만 명으로 추산한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2008년 약 15만 명에 불과했던 채식 인구가 현재 전체 인구의 5%인 약 250만 명 수준에 이른다. 여론조사에서도 성인 10명 중 2명 가까이가 채식을 실천하거나 지향한다고 답해, 채식이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비거니즘은 단지 식습관이 아니라 근래 동물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모든 형태의 것을 배제하는 철학과 생활방식을 담고 있다. 비건 생활양식(Vegan lifestyle)은 먹거리를 넘어 가죽제품, 양모, 오리털, 동물 화학 실험을 하는 제품 등 동물을 착취해서 만든 모든 것들의 소비를 지양하는 습관, 이러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실천적 가치로 그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비건 트렌드 확산이 동물권 보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 기후정의, 지속가능한 삶의 실현 등 한국 사회가 실현해야 할 다양성의 가치를 포괄한다는 사실이다. 동물에 대한 학대를 정당화하는 것은 소외된 인간 집단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거나 영향을 주어 그들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구 기온 상승으로 인간과 인간-너머(More-Than-Human) 존재 모두에게 닥칠 파국에 대한 경고등이 켜지면서 비거니즘의 문제의식이 더 큰 힘을 얻고 있다. 인간 중심의 지속 가능성만으로 세계가 과연 존속될 수 있는지, 기후위기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과학기술의 발전만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건을 실천하는 개인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공동체가 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정책을 만들고 그러한 사회를 공유하는 교류・연대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부산대학교 여성연구소는 대학이라는 특정한 공간 내 구성원들의 비건 생활양식에 대한 경험을 조사해 학내 다양성 실현 방안을 모색할 계기로 삼고자 하였다. 서두에 소개한 외국인 학생의 말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부산대학교에서 ‘모두를 위한 한 끼’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다양성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소수자가 학내에서 겪는 일상의 불편과 차별이 비가시화되고 있었다. 실제로 비건 선언은 한국에서 ‘사회적 자살’이라 말해지기도 한다. 이는 ‘동일성’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이다. 비건이란 선택은 암묵적으로 정해진 사회적 동일성에서 벗어나는 행동이기에, 누군가 비건을 선언하는 순간, 정상 범주 밖의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정해진 규율대로 행동해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다양성이 존중받기란 쉽지 않다. 부산대학교 여성연구소는 ‘모두를 존중하는 식탁’이야말로 다양성 문화의 출발점이라 생각하고 학내 구성원의 비건 생활과 경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였다.
부산대학교 학내 구성원의 비건 생활양식 경험 연구
연구팀은 지난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 간 ‘부산대학교 학내 구성원의 비건 생활양식 경험 연구’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연구 목표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한끼 식사’에서 출발해 인간 중심적 캠퍼스 문화를 되돌아보고 캠퍼스에서 생태적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우선 비건 생활 경험에 대한 학술적 조사를 수행하고, 나아가 부산대학교에서 식단 관련 정책 도입을 제안하는 것을 연구 목적으로 삼았다.
![]()
<그림 1> 「부산대학교 구성원의 비건 생활양식 경험 연구」(2025.11) 표지
연구팀이 인터뷰 참여자를 발굴, 선정하는 과정은 생각만큼 원활하지 않았다. 일차적으로 비건을 대상자로 찾았으나 인터뷰 참여자 대부분이 비건과 비건 지향을 병행하고 있다면서 인터뷰 참여를 주저하였다. 이에 인터뷰 대상을 비건뿐만 아니라 비건 지향인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하고, 총 13명의 참여자를 선정하였다. 연구 참여자들이 비건을 지속한 기간은 6개월부터 23년에 이르기까지 편차가 컸다. 1년 미만 1명, 1~3년 2명, 4~6년 6명, 7~10년 2명. 20~23년 2명으로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로 20대 6명, 30대 2명, 40대 4명, 50대 1명으로 구성되었다. 소속은 학부생, 대학원생, 직원, 교원으로 고르게 구성하였다. 성별을 살펴보면 연구참여자 13명 중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이었다. 남성을 접촉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남성 1명의 경우 비건을 선택할 때에는 여성이었으나 인터뷰 당시는 트랜스 남성이라고 소개하였다.
연구 결과 부산대학교 식단에서 다양성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학식에서 비건·할랄 등 다양한 식습관을 가진 구성원들이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종교적 이유로 할랄식이 필수인 무슬림 학생들이 교내는 물론 부산 시내에서도 식사할 곳을 찾지 못해 인근 도시까지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건 (지향) 학내 구성원들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연구 참가자 A씨는 “학교 안에서 갈 수 있는 식당이 없고 학교 주변에도 갈 수 있는 식당이 거의 없다”며 토로했다.
인터뷰 참여자들이 비건 (지향) 삶을 선택한 계기는 다양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동물보호 관련 정보를 접하며 비건을 선택한 경우도 있었다. 혹은 모든 유형의 혐오 지양이 비건의 출발점이었다는 응답도 있었다. 비건을 선택함으로써 얻은 장점은 피부 트러블, 과체중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했다는 것이었다. 반면 편견, 낙인, 인간관계에서의 배제 등 일상의 장벽을 만난 경우도 많았다. 한식에는 비건 메뉴가 많은 것 같지만, 막상 공동체 활동을 하려면 현실적 고려사항들이 산재했다.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지기 싫어 회식 자리 등에서는 고기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비건을 위해 식당이 따로 메뉴를 준비해야 하거나 함께 식사하는 구성원들이 곤란해하는 상황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적 생활을 유지하고자 간헐적으로 비건을 중단하고, 사적 생활에서는 비건 식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편 한국 사회에서 비건이라고 표방했을 때 까다롭거나 유별나다고 보는 탓에 굳이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아 비건 정체성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답변도 두드러졌다.
흥미로운 점은 비건에 대한 연구참여자들의 정의가 다채로웠다는 것이다. 연구자 참여자들은 비건 실천을 ‘더불어 살아가기’의 한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출발은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누군가를 위한 선택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인식할 때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들이 비건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하였다. 개인의 건강관리, 먹거리 안정성 에서부터 환경보호,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 등에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나아가 비건 (지향) 실천이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또한 비건이 단순한 식습관이 아니라 “동물성 제품을 거부하고 지구의 다양한 생명종과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저항이자 삶의 철학”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는 공장식 축산 반대, 기후정의, 동물권, 먹거리 정의 등 다양한 정의 담론과 맞닿아 있음에 주목했다. 연구 참가자 B는 “죽어도 되는 존재는 없다”는 말로 비건의 ‘윤리적 기반’을 강조하며, 비건 실천이 생물종정의, 환경정의 등 여러 층위의 정의와 교차된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연구 참여자들을 만나며 비건의 핵심이 가치지향적인 태도임을 알 수 있었다. 저마다의 이유로 채식을 시작하지만 결국 적게 쓰고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실천으로 각각의 생활이 수렴되고 있었다. 이들에게 채식은 어쩌면 하나의 출발점인 듯 보인다. 비건 문화의 핵심은 채식을 넘어 생명에 대한 존중과 공존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고 있었다. 인간의 건강이 지구 건강과 분리할 수 없이 얽혀 있고,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 세상을 지향하였다.
연구팀은 2025년 11월 27일 성과보고회를 개최하였고, 이 자리에서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정책 제안 내용을 공유하였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교내 식단에서 다양성 확보가 시급함을 제시하였다. 외국인은 물론 종교적 배경, 채식 지향인이 일정 비율로 존재하는 대학에서 채식 선택권이 확보된다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식탁’의 실현이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기후정의 실천의 방안으로써, 교내 친환경 물품 사용 장려, 친환경 문화 조성을 위한 재생마켓 정기 운영 등을 제시하였다. 중장기 정책으로는 비건 및 기후변화, 동물권 등 교양과목 발굴하고 확대하기, 나무심기를 통한 교내 친환경 조성, 교내 기자재를 친환경 제품으로 전환하기 등이 제안되었다. 국가 차원에서는 초등학교 과정부터 환경 생태교육 의무 도입, 다양성 교육의 일환으로 공교육 과정에서 비건 생활양식 실천 등을 요구하였다. 성과 공유회는 인간과 인간-너머 존재들이 공존할 수 있는 삶의 양식으로서의 비건-되기(becoming-vegan)가 부산대학교에서 느슨한 관계 맺기를 시작한다고 선언하는 자리였다.
![]()
<그림 2> 부산대학교 여성연구소 연구조사사업 성과 공유회(25.11.27)
![]()
<그림 3> 성과공유회 현장에 준비한 비건식 케이틀링
다 함께 만드는 세계: 생태, 돌봄, 공동체
페미니스트 환경 사상가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는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에서 생태세(Ecocene)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생태세는 생명을 형성, 유지, 지탱하는 생물권과 지구의 생태학적 과정이 존중되는 시대를 일컫는다. 인간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구에 존재하는 생태환경 전부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근래 인간이 도구와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인간-너머 존재에 대한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요청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넘어 지구가 불타는 시대, 전지구적 다중위기 앞에서 대전환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전지구적 위기 속에서 비건은 이제 하나의 유행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임을 본 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만이 자연을 향유하는 일방향적 세상이 아니라 자연 내 모든 생명체와 인간이 쌍방향으로 공존할 수 있는 세계를 지금 바로 여기서 논의할 때다.
사회가 다양성을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따라 비건을 바라보는 태도는 상이하다. 서구에서는 비건이 단순한 식습관을 넘어 윤리적‧환경적 라이프스타일로 인정받고 있다. 영국에서는 ‘윤리적 비거니즘(Ethical Veganism)’을 보호해야 할 신념으로 법원이 판결했고 독일에서는 공공기관과 학교에서 비건 옵션 제공이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에서도 비건이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이자 비스니스로 자리잡으면서 대체육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비건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미비하다. 급식이나 공공기관 식단에는 채식 선택권이 거의 없고, 비건 인증제도도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개인의 선택이 ‘불편한 요구’로 인식되기도 한다.
분명한 점은 해외 대학에서 ‘비건의 공공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이 기후 위기에 대처하고자 100%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채식 기반 급식으로 전환을 촉구하는 캠페인이 영국을 필두로 시작되어 유럽 10개 국가 75개 대학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학에서 비건 식단이 이미 필수인 나라들도 주목할 대목이다. 국가별 비건 식단 도입률은 포르투갈 100%, 프랑스 94%, 네덜란드 90%, 이탈리아 79%, 독일 66%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홍콩이나 일본의 대학들에서 비건 식단 도입과 비건 기반 삶에 대한 강좌를 개설 중이다.
관건은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다. 비건이든, 채식주의자든, 육식을 즐기는 이든, 서로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편견 없이 인정받을 때, ‘모두를 위한 한끼’가 실현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양성 문화야말로 ‘모두를 위한 식탁’의 핵심 덕목일 것이다. 연구 참여자 C는 “세상에는 한명의 채식주의자보다 열 명의 불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구, 사람, 동물 모두를 위해 한 사람의 완전한 채식인을 만드는 것보다 다수가 고기를 덜 먹는 간헐적 채식이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변화는 완벽한 실천에서 시작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평범한 이들의 소소한 행동이 모여 비롯되기도 한다. 페미니스트 작가 록산 게이(Roxane Gay)는 말했다.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기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걸 선택하겠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하는 편이 세상의 변화를 앞당길 수 있는 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작은 관심과 실천이 모여 지구와의 건강한 공존을 만들어 갈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