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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을 꿈꾸던 소녀, 세종기지에 발을 내딛다!
2014.12.05Hit 6723

[나는 전진기지다] 안 나(남극세종기지 월동대원)


남극을 꿈꾸던 소녀, 세종기지에 발을 내딛다!

 

남극세종기지 월동대원 중 안인영 대장 외에 또 한명의 여성이 있다. 남극을 너무나 사랑해 결혼 조건으로 남극에 가게 해 준다는 조건을 달았고, 석사학위도 남극에 대해 썼던 그녀의 이름은 ‘안나’이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이번 28차 월동대에 선발되어 남극에 가게 되었다. 인터뷰를 요청했다.  ‘일’로 시작된 인터뷰였지만 결과는 너무나 값진 ‘멘토링’이 되었다. 과학자가 과학하는 것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것과 일맥상통하구나. 우리는 미래의 ‘꿈’을 위해 지금의 ‘일’을 견뎌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과 꿈은 별개가 아니다. 삶의 여정 안에 공존한다. 남극으로 향하는 여정 중에 보내온 안 연구원의 글을 싣는다. 남극과 자연을 사랑하는 안 대원의 꿈과 열정이 그의  삶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편집자가 느꼈던 열정과 진지함을 독자 여러분도 느껴보길 바란다. - 편집자주

 

남극(Antarctic) 모형도 위에서 손 맞잡고 있는 안인영 대장(좌)과 안나 월동대원(우)

 



2003년 WISET 기자단 활동

 

 저는 2003년부터 WISET의 전신 WISE에서 기자단 2기로 활동하였고 주로 인터뷰를 담당했습니다. WISE의 멘토링 프로그램은 당시로서는 드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여성과학자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구축하는데 WISE의 멘토링 프로그램이 아주 좋은 플랫폼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조한희 계룡산자연사박물관 관장, 김선아 조선대 수학과 교수님을 멘토로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안인영 대장과의 인연

 

 안인영 박사님이 남극의 과학자로서 어떤 분이신지 WISET 메일과 타 기관 기사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안인영 박사님의 CV와 남극큰띠조개(Laternula elliptica)에 대한 논문도 저장해 두고 있었습니다.

 

 2013년 2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27차 월동대 지원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WISET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남극에 계신 안인영 대장님의 글이었습니다. 제목은 남극 바다에 취하다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편집자 주 : WISET에서는 리더급 여성과기인이 차세대 과학자에 전하는 조언을 담은 멘토링레터를 보내주고 있음.)

 2013년 12월 서울대학교에서 독도세미나가 있었는데 거기서 안인영 박사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학위논문 Happy Wintering Design in Antarctica(행복한 남극월동디자인)을 전해드렸습니다. 저는 그때 27차 월동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상태여서 뭘 새로 만들고 쓸 힘이 없었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논문 밖에 없었습니다.

2014년 4월 안인영 박사님이 연락을 주셔서 따로 만나 뵈었습니다. 저는 제가 여전히 남극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와 다짐 등을 적은 편지, 제가 쓴 남극 동화 겨울의 김수박을 드렸습니다. 박사님은 제 편지를 좋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따뜻하고 실제적인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안인영 박사님 덕분에 용기를 내어 세종과학기지 월동대에 다시 지원했습니다.

남극세종과학기지 28차 월동대장, 생명과학 분야 연구원으로 안인영 박사님과 남극에 함께 갈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남극 도전 실패, 그리고 재도전, 꿈은 현재진행형

 

저를 조직에서 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항상 주저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얘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2013년 월동대원 선발 최종면접에서 인재개발팀의 어떤 분이 제게 정체성이 뭔지 물어보셨습니다. 남극만을 보고 오로지 달려온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력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순간순간 마음이 끌리는 곳에 몰입하고 빠졌고 열정과 성의를 다했다고 답했습니다. 그게 진심이었습니다.

그 어떤 대안도 생각한 적 없을 만큼 남극을 사랑했고, 저는 붙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탈락 후 마치 실연당한 것 같은 기분에 몹시 힘들었습니다. 편의점 음식이나 통조림 음식을 제멋대로 먹고 잘 웃지도 않았습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량화해서 딱 내놓을 수 있는 답을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런 준비에 취약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여 년간 써온 일기를 한번 쭉 보았습니다. 산으로 들로 다니는 거 좋아했습니다. 그냥 있는 자연을 가만히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동물이 나타나면 그 자리에 또 가기도 했습니다. 근데 그 아이가 어제 본 그 아이인지가 궁금해서 또 가게 되고 또 가게 됐습니다.

계속 보다 보면 보입니다. 경로에 대해, 패턴에 대해, 그게 손에 잡히지 않을 때에도 기다리면 보입니다. 그게 자연이 주는 암시이고 신호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작은 나라지만 서울 잎사귀가 다르고 춘천 잎사귀가 다릅니다. 텔레비전 화면처럼 4:9, 5:16 처럼 가로 세로 비율이 다릅니다. 옆면의 노란 선도 다릅니다. 저는 그게 너무 재밌습니다.

원형에 가까운 자연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감동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동양화처럼 여백이 많은 곳에 있는 오브제를 보고 싶습니다. 그래야 집중하기 쉽습니다. 대상에 오롯이 집중해 보고 싶습니다. 엄청 많은 수의 종은 아닐지라도 단 하나의 종이라도, 제가 살면서 그 종의 시간을, 생활사를 기록해 주고 싶습니다. 빨리빨리 혹은 많이 많이 해서 어디 저널에 싣고, 싣고… 그런 정량적이고 통계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을지라도 그냥 그 생물을 보고 싶습니다.

안인영 대장님은 제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해 주신 분입니다. 그냥 가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쭉 보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히 그가 상사여서, 멘토여서 누군가의 말을 따르고 그의 가치관을 체화하는 것은 별로 건강한 방식이 아닙니다. 저는 저를 이해해 주시는 분과 남극에 같이 갈 수 있어서 매우 행복합니다. 안인영 대장님이 제가 마음으로부터 좋아할 수 있는 분이어서 좋습니다.

 

‘물고기는 왜 얼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AFP를 발견했듯이
자연에 대한 의문에서 과학은 시작된다. 목표를 너무 뚜렷하게 잡지마라

 
안인영 대장님께 들은 얘기입니다. 100% 동의하고 스스로도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서 전해 드립니다.
 
양궁 과녁같이 목표를 정해두지 마세요. 자기 계획이나 연구가 뜻대로 안되면 자괴감에 빠지거나 환경 탓을 하게 되는데 그때 나오는 에너지가 별로 좋은 에너지가 아닙니다. 피부가 늙어요.
 
사실 과학 자체에는 목표가 없습니다.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특이한 현상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과학이 시작이 됩니다. 그 의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특이한 걸 발견할 수도 있고, 부산물로 유용물질을 발견해서 산업화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어딘가로 가는 도중에 성과가 생겨나는 거거든요. 생기는 게 아니고 생겨나는 거라는 말이 정확할 거 같습니다.
 
목표를 너무 뚜렷하게 정해놓으면 결과가 실패 혹은 성공. 이렇게 두 가지에요. 실패했을 경우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깨닫는 것 이외의 부산물이 하나도 없어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바닷물의 빙점은 -1.8℃도예요. 그런데 남극 바닷물에 사는 물고기 체액은 바닷물보다 안 짭니다. 체액이 바닷물보다 짜지 않기 때문에 얼어야 하는데 남극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는 안 얼고 잘 살아 있어요. 남극 물고기가 AFP(Anti Freeze Protein)라는 일종의 부동액을 갖고 있어서 그런 건데요. 드 브리(Arthur L. DeVries)라는 미국과학자가 그걸 처음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드 브리 박사님 처음에 아 내가 남극에서 AFP를 발견해야 하겠다라고 목표를 세우고 연구를 시작한 게 아니거든요. 드 브리 박사님은 1950년대에 남극에 처음 갔는데, 가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다이너마이트로 쩡쩡하게 얼은 두꺼운 얼음을 깨고 그 안에 낚싯줄을 드리워서 남극 대구(Notothenia neglecta)를 잡았던 일이었다고 합니다.
 
어?! 수온은 거의 -1.8도이고 체액에 소금기도 없는데 얘네들이 왜 안 얼까? 그런 의문을 갖고 드브리 박사님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생태 연구부터 시작해서 처음 낚시했던 그 바다의 수온분포부터 그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 종류, 생리기작까지..그렇게 수많은 좋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동액이라는 게 있구나 라는 걸 알게 된 겁니다. 드브리 박사는 부동액을 분리추출하고 구조를 발견했고 합성해서 상업적으로 시판해서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는데 30년, 40년 걸렸습니다. 드브리 박사님의 처음 목적은 그렇게 돈 버는 게 아니었고요.


‘구글 어스’로 지구를 둘려보듯이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라
 
저는 Google Earth를 이용해서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축척 조절해가면서 들여다보면 가깝게 보였다 멀게 보였다 하잖아요. 너무 가까이서 보면 핀 꽂힌 목표지점이랑 지명 말고는 보이는 게 없어요. 먼 곳에서 들여다봐야 전체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게 왜 필요했던 일인지, 인과관계에 대해, 촘촘한 그물에 대해, 그 그물이 직조된 원인과 방식에 대해 들여다보는 일을 종종 해 보세요.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돈을 들여서라도 자기 시간을 살 수 있으면 좋습니다. 자기 시간을 확보하고 그 시간을 내 마음대로 운용할 때의 쾌감이 있습니다. 설령 이불 속에 몇 분 더 머무는 소위 게을러 보이는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시간이 갖는 의미는 정말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 안 나(제 28차 남극 세종기지 월동대원) 약력 --
2002-07 WISE 기자단 활동 (2기_당시 멘토: 조선대 수학과 김선아 교수님)
2009 이화여대 생명과학과 졸업(부전공 철학)
2010-11 동경대 정보이공학계 연구생
2013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지능형융합시스템학과 석사 졸업
2014 대한민국 남극세종과학기지 28차 월동연구대 생물연구원


 지난 11월 말 아시아 최초 여성월동대장 안인영 박사가 이끄는 28차 남극세종기지 월동대가 남극을 향해 출발했다. 보통 남극 세종기지 월동대는 칠레 최남단 도시 푼타 아레나스에서 칠레 공군 수송기를 타고 칠레 기지에 도착한 뒤 다시 조디악이라는 고무보트를 타고 세종기지로 이동한다고 한다. 안나 연구원은 11월 29일 월동대가 산티아고를 떠나 푼타 아레나스로 향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아마 지금쯤 남극에 닿았겠다. 오랫동안 염원했던 남극에 첫 발을 내딛고 있을 안 연구원의 건승을 빈다. 또 남극에서 전하는 안 연구원의 소식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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