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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기고] 과학기술 정책의 합리성과 다양성 - 김준모 건국대학교 교수

조회수129 등록일2025-06-16

[DIWiTH 다양성 기고]

[다양성 기고] 과학기술 정책의 합리성과 다양성


사진 표시
 

김준모 건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WISET ESG 경영위원장






 


 정책 결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이슈나 현안을 해결하거나 개선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기에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이 기본 전제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그 대상이 과학기술의 영역인 과학기술 정책의 수립 과정은 어떠할까? 이 영역은 완전한 합리성을 지향할 수 있을까아니면 다른 정책 결정의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합리성의 추구가 제약될 것인가? 이러한 화두로 정책 결정에 접근하는 논의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실제 과학기술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기술정책의 기획 의제 설정, 정책 결정과 평가에 이르기까지 합리성의 요소와 합리성 이외의 요소들이 모두 존재하게 된다.


바네바 부시 정보처리의 한계 언급

 

  오늘날 미국뿐 아니라 일본, 우리나라, 유럽, 중국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 정책 특히 예산 배분을 위한 기관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은 1940년대에 루스벨트 대통령의 과학 보좌관이었던 바네바 부시(Vannevar Bush)1)인데 그의 정책 설계대로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National Science Foundaiton)이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의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일본의 일본과학재단(JSF, Japan Science Foundation) 등의 기관 설립에 영감을 주었다그는 이러한 제도적 측면의 영감 뿐 아니라, 1940년대에 이미 우리가 물과 공기처럼 여기는 인터넷의 비전까지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다바네바 부시는 만일 연구자의 정보 처리량이 확대될 수 있다면, 업무 처리의 범위와 속도가 비약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면서스크린과 같은 디스플레이에 투사되는 정보의 흐름을 예견했었다.2) 즉 인간으로서의 정보처리 용량 한계가 존재하는 면과 정보처리 기술 발전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줄로 기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1) 레이시온(Raytheon)의 전신이었던 회사를 설립했으며, 메사추세스 공과대학교(MIT) 부총장 및 공과대학(School of Engineering) 학장을 역임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과학 보좌관이기도 했다. (출처: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www.nsf.gov/science-matters/75-years-endless-frontier-vision-future-rooted)

2) 바네바 부시(Bush, Vannevar.), "As We May Think," The Atlantic Monthly 176, no. 1 (1945): 101-108 / 클라이브 톰슨(Thompson, Tomas Clive.), Smarter Than You Think: How Technology Is Changing Our Minds for the Better (Pengui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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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모형과 점증모형: 합리모형과 우주 정책

 

  이제 정보처리 용량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정책 결정의 논의로 돌아와 보면, 정책 결정에는 여러 모델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모델은 합리모형(Rational Model)과 점증모형(Incrementalism)으로 대표된다. 합리모형은 그야말로 합리성의 추구를 목표로 한다. 합리모형은 경제학의 이론들과 관리과학에서의 여러 가지 모형들로 지칭될 수 있으며, 체스 놀이와 같은 의사결정 상황에 대한 분석모형, 독점기업의 생산량 조절이론과 같은 게임 이론, 관리과학 기반의 통계적 결정이론을 포함하는 다양한 계량적인 정책분석기법을 포괄하지만, 모든 계량적 정책 결정 방법이 합리모형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합리모형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책결정자는 문제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상호 비교할 수 있다. 정책결정자가 추구하는 선호(preference)와 가치들은 중요도에 따라 서열화될 수 있다. 문제해결을 위한 모든 대안이 탐색될 수 있고 각 대안의 모든 비용과 편익이 계산될 수 있어야 한다. 각 대안의 결과들이 비교될 수 있다. 의사결정자는 목표나 선호를 극대화하는 대안을 선택한다. 즉 결정과 예산 투입은 목표 달성으로 연결된다는 인과성을 전제한다.

 

  합리모형이 정책 결정으로서 성공적이었던 예시를 든다면 단연코 1960년대의 미국의 우주 정책을 들 수 있다. 이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첫째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있었다. 이는 과학에 대한 예산 투입이 결과로 이어진다는 대중과 사회 전반의 신뢰로 표현할 수 있다. 둘째, 충분한 재정적 여유가 있었고, 셋째, 위 둘을 바탕으로 하여 합리모형으로 지칭될 수 있는 정책 결정 모형의 구조에 부합하는 정책 추진이 이루어졌다.

합리모형의 배경이란, 1) 당시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이 부여하는 정책의제가 하향식(Top-down)으로 제시되었고, 2) 외부의 이벤트(구소련의 스푸트니크 쇼크)에 의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히 정해졌으며, 3) 당시의 충분한 재정적 여건이 허락될 수 있었고, 4) 충분한 과학자와 미국 항공우주국(NASA,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비롯한 추진 기관들이 존재하였다. 즉 명확한 목표, 수단과 목적에 대한 인과 관계의 확보, 충분한 재원 등 합리모형으로 이해되던 여건이 충족된 상황이었다.3)

  즉, 합리모형은 완전한 정보와 자원이 구비된 상태에서 예산 투입이 결과로 이어진다는 인과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 빛을 보게 된다.

3) 김준모, 인공지능 시대의 정책 결정: 과학기술정책과 정보화 맥락(지식나무,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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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증주의 모형과 다양성의 반영

 

  이렇게 성공의 획을 긋던 미국의 우주 정책은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를 지나며 예산 배정 면에서도 큰 변화를 겪는다. NASA는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아폴로 시대 이후의 우주 왕복선 사업을 기획하고 있었는데, 미국 대통령실 산하의 관리예산국(OMB, Office of Management of Budget)는 우주 왕복선 계획이 향후 비용 효과적(Cost Effective)일 것이라는 NASA의 주장에 회의를 표하였고, 닉슨 대통령은 우주 개발 지출은 국가의 (재정적) 우선순위에 대한 엄격한 체제 하에서 (자신의) 적절한 입지를 취해야 한다” 라고 제시하여 우주 개발 투자는 계속 지속되는 과정이며, 막대한 에너지(자원)가 요구되는 구분되는 대도약의 연속이 아니라고 언급하고 있다.4)

, 합리모형에서 벗어나 여러 이해관계가 경합하는 가운데, 확보된 부분이 우주 예산이라는 점을 밝힌 것인데, 정책학이나 예산을 다루는 재무학에서 점증주의라 불리는 모형을 노정 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과학기술 정책 분야에도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공공의 자금이 투입되는 대규모 연구 개발일수록 복수의 정답이나 해결책이 경합할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엔 그 사회가 감당할 만한 수준에서 조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 간의 경합, 토론과 공청회와 논쟁이 있게 되고 이러한 활동들은 일면 건강한 조정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연구 개발 예산의 배분 면에서도 다원주의적, 분권적 의사결정, 젊은 과학자와 시니어 과학자 간의 예산 배분, 특정 분야에서 낮게 참여하는 성별 간 균형 조정, 대형 사업단 대 소형 사업단의 배정, 다양한 경력 과정에 대한 배려, 전통적으로 낮게 대변된 이해관계나 학파에 대한 고려 등 단일한 정답을 찾는 합리모형으로부터의 대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책결정 그림

 

 

 

정보량과 정책 결정의 품질

 

이제 다시 정보처리 용량의 논의로 돌아와 본다. 인류는 대략 1950년대와 1960년대부터 미국을 시작으로 민간 부문에서는 경영정보시스템(M.I.S, Management Information Systems)을 도입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 경영정보시스템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다. 행정 영역에서는 1980년대부터 공공 부문 경영정보시스템(PMIS, Public Sector Management Information Systems)을 도입하여 꾸준히 발전시켰다. 이후 전자정부로 패러다임이 변화했고, 이제는 인공지능 시대의 시스템을 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고 되새겨야 할 논점이 있다. ‘우리는 많아진 정보의 양을 소화해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이렇게 많은 정보량을 소유하거나 활용할 때 정책 결정의 질이 정말 향상되는가?’에 대한 심각한 자아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의 진전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그 성능을 막론하고, 이러한 기술의 활용이 정보 처리량의 문제를 해소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자 할 것이다.

여기서 차분히 짚고 넘어갈 점은 인공지능 시스템이 정보 처리량 문제를 정리해 주는 것은 맞지만, 인간이라는 정보처리 시스템의 한계는 존재한다는 점이다. 2024년에 작고한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같은 인지 심리학자들의 연구 전통은 이러한 물음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와 준 귀중한 접근으로 볼 수 있다.


정보 처리 그림


합리성과 다양성의 균형

 

  앞의 예를 통해 과학기술정책 영역 역시 공공의 문제인 만큼 합리성을 추구해야 하지만, 해결책이 합리모형에 기반한 '정답'을 추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럼에도 인간이 지성을 갖고 있는 한, 그리고 현 상태로부터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한 합리성의 추구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합리성의 추구가 어렵다고 해서 무작정 점증주의에 결정을 맡길 수도 없다. 이는 현안과 미래를 모두 다루는 과학기술 분야 정책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전 세대에서 이어져 온 논쟁처럼, 지금의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 역시 합리성을 얼마나, 어떻게 증진하고 현실적인 타협점을 어디에 둘지에 대한 기나긴 토론과 경합의 여정을 이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발전하는 정보처리 분석 능력과 제한된 인간의 결정 능력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지속될 과정이다.

  또한 이러한 노력 가운데서도 우리는 다양성에 대한 균형 잡음이 주는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과학 커뮤니티의 발전 면에서 주는 중요성과 장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